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너른 마당과 나즈막한 한옥을 감싸는 거대한 숲의 전경을 가진, '푸른 산 능선 아래 안온한 집' 첫번째 산온 양평, 광활한 들판 속 우뚝 솟은 나만의 오아시스 같았던 '부유 속의 부유' 두번째 산온 리트릿에 이어, 푸르른 산능선을 바라보며 항해하고 정박하는 자발적 고립의 공간, ‘산온’의 세번째 공간, 산온 잔등을 그렸습니다.
처음 대지를 방문했을 때, 대지의 뒷쪽으로 나즈막한 산이 대지를 포근히 감싸고 있고 앞쪽으로는 드넓은 산능선이 펼쳐져있는 대지의 형상이 인상 깊었는데, 건축주가 이 땅을 선택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 였다고해요. 이 대지가 주는 자연의 느낌 그대로를 세번째 이야기의 컨셉으로 가져가면 좋겠다싶었습니다.
이 곳을 채울 공간이 등 뒤의 산자락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쉼이 있는 공간이면서도 눈 앞에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산능선처럼 새로운 환기가 가능한, 탁 트인 공간이 되기를 바랬어요.
산온 잔등 프로젝트는 기존 대지에 존치하고 있었던 구옥동을 살린 ‘아래동’과 빈 대지에 새로이 건축된 신축 ’너머동’의 2동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하 잔등-아래/ 잔등-너머)
먼저 구옥인 잔등-아래는 기존 건물의 느낌을 살려서 기존 벽돌 외장재와 형태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리노베이션만을 거쳐 완성시켰습니다. 말 그대로의 최소한의 비용, 최대의 효과가 반복해서 요구되던 현장이었거든요. 할머니집에서 느낄 수 있었던 좋았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다양한 컨텐츠들을 라이프이즈로맨스(LIIR)만의 스타일로 풀어내기위한 디자인 시도들이 있었는데요, 이를테면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골방에서 몰래 만화책 보기, 마당에서 가족들과 다같이 고기 구워먹기, 바닥에 드러누워 수박 먹기,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가로이 시간 보내기 등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상상 속 이미지의 퍼즐을 맞추어나갔습니다.
벽식구조의 건물 특성상 설계단계에서 구조적으로 바꿀 수 없는 벽이나 기둥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유지하면서 완벽히 새로운 레이아웃을 창조한다는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가령 기존 현관이 있던 부분은 거실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구조보강을 위한 기둥이 생겨야했어요. 거실의 한복판이라 기능의 변경없이 기존의 불합리한 평면을 고수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는 거실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둥과 이어진 테이블을 구성하고, 기둥의 중간에는 프래그런스 등의 소품을 비치할 수 있는 선반 요소를 적용했죠. 결과적으로는 산온-아래의 포인트 공간으로 사용될만큼 디자인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아름다운 요소로 완성되었습니다. 의도치않았던 현장의 컨디션이 오히려 더 특별한 요소로 완성된 멋진 순간이었어요.
반면 신축인 잔등-너머는 구옥과는 차별화된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었습니다. 가장 미니멀하고 단순한 구조 속에서 경험하는 가장 현대적이고 극적인 공감각적 자극을 상상했어요. 잔등-너머의 평면 레이아웃은 사각형 박스를 기준으로 가운데에 주요 코어를 배치한 순환형 구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침실 하나와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이 트여있고 순환할 수 있는 오픈형 구조에요. 그 안에서 공간 내 다양한 레벨 차이를 통해 시각적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한편 공간의 레이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프레임을 통해서 공간의 깊이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어떤 유리문이나 벽 없이 오픈된 공간에 구성된 실내 자쿠지 공간은 잔등-너머가 말하고자하는 새로운 자극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입니다.
산온-아래는 기존에 있던 구옥을 살린 레트로한 무드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이고, 산온-너머는 빈 도화지 위 여러개의 선과 면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현대적 무드의 공간인데,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히 다른 두 동을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스토리 안에 녹여내기 위해서는 건축 디자인과 더불어 깊은 감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이 동반되어야했습니다.
‘잔등’은 산 능선의 방언이기도 하지만 '깊은 밤의 꺼질락말락 하는 희미한 등불'이라는 뜻도 가집니다. 이 공간에서 머무는 모든 이가 자연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고 다시 빛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죠. 현실의 항해 끝에 자연 속에 정박한 오늘의 당신을 위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처음 대지를 보며 생각했던 추상적인 키워드 ‘포근함’과 ‘환기’를 ‘잔등’이 가진 시적 이미지와 결합해 ‘위로’와 ‘희망’이라는 선명한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구옥동과 신축동을 구분하는 이름인 ‘아래’동과 ‘너머’ 동도 위로를 전하는 곳은 산능선 ‘아래’의 포근한 공간, 희망을 전하는 것은 산능선 ‘너머’의 탁 트인 공간 이라는 의미에서 정해졌어요.
완벽히 다른 두 동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가기위해 다양한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구옥과 신축을 이어주고, 레트로와 모던을 이어주며, 할머니집과 펜트하우스를 이어줄 수 있는 것. 우리가 사용한 건축적 언어는 믹스앤매치(mix and match)였습니다. 이질적인 재료와 마감방식,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 언어를 적절히 섞어 부담스럽지않고 우리의 디자인 언어를 산온의 방향성에 맞추어 적용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과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믹스앤매치의 공간은 눈에 보이지않는 수많은 고민과 결정으로부터 완성된거죠.
아이보리색 도장 마감재와 원목 마루 등 따듯하고 아늑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자재를 주로 사용하되, 서스 가구와 블랙가구로 포인트를 부여했습니다. 대개 서스는 차가운 느낌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서스는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 따뜻한 무드로도 풀어낼 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가구나 공간을 구획하는 조형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디테일을 지워낸 깔끔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적용해, 공간을 사용하거나 사진을 남길 때, 오롯이 사용자와 풍경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 되길 바랬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시각적인 것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물리적인 요소를 넘어 이 공간에서 경험하게될 사용자의 낭만, 행위, 감각 모두를 상상하며 경험적 컨텐츠를 설계했어요.
산온-너머에는 제법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데, 수영장은 정사각형태의 단순한 모양이지만 수영장의 옆에 계단형식의 좌석을 만들어 마치 시각적으로는 수영장이 확장되는듯한 느낌을 받게 했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레벨의 차이를 이용해 앉거나, 기대거나, 눕거나 사용자의 니즈에 맞추어 다양한 행위를 갖는 공간경험을 의도했어요. 마당의 한복판에 있지만 마당의 기능에 따라 일부가 가려지거나 완전히 열려있는 부분이 생기는것 또한 공간 내외부에서의 경험을 극대화하기위한 장치입니다.
수영장 옆에는 비치 체어와 파이어핏을 두었는데, 물놀이 후 바로 따뜻한 불을 쬐면서 일렁이는 수영장의 물결과
빨갛게 타오르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는 낭만을 상상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수영장일때도, 까만 밤 작은 별이 반짝이는 깊은 밤 속 푸른빛이 일렁이는 수영장일때도 시간과 날씨에 구애받지않는 낭만적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산온-아래의 마당에는 수영장 대신 화덕을 설치해 두었는데요, 커다란 야외 테이블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화덕에서 갓 구운 잘 익은 음식을 꺼내 사랑하는 사람과 나눠먹는 행복한 순간의 중심이 되길 바랬어요. 또 실외수영장 대신 실내의 커다란 자쿠지를 마련해두었는데, 산온-아래의 실내자쿠지는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둔 동선을 따라 들어가야 비로소 등장합니다. 둥그런 천장에 비추어지는 노란 조명과 물이 반사되며 만들어내는 일렁임과 함께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찰랑대는 물 소리를 들으며 노곤하게 풀리는 몸과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죠.
산온 잔등은 루프탑 정원이 있는 스테이라는 점에서 보다 차별화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 설계안에서는 예산적 제한으로 인해 루프탑 정원이 계획되지 않았지만 공사 중 현장을 방문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산 능선을 보고 건축주와 라이프이즈로맨스(LIIR) 모두 이견없이 루프탑을 넣기로 했어요. 옥상에서 바라보는 전경 자체가 산온 잔등만의 차별화 포인트이자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산능선을 바라보며 잘 가꿔진 루프탑 정원에서 느릿하게 하루의 풍경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면 마치 깊은 산 속 어딘가에서 정박하고있는듯한 행복한 고립감을 느낄 수 있으실거에요. 산온 잔등에 방문하신다면 루프탑을 꼭 올라가 보시길.
사람은 언제나 다음을 향해 쉼없이 이동하기 마련이죠.
그렇기에 우리에겐 정박할 시간이 필요해요. 이동하는 삶과 정박하는 삶.
당신의 머무르는 시간을 위한 공간, 산온 잔등